알람이 울린다. 천근만근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올리며 테이블 위에 있는, 곧 더 시끄러워질 자명종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개운하다 싶었다. 아직 이불 속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오늘도 지각이다.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마치고 일찍 일어나서 읽으려고 했던 책을 가방에 던져넣는다.
가방이 묵직하니 보람찬 하루가 시작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출근길에 듣기로 마음먹은 경제 뉴스는 지각을 핑계로 내일의 뉴스가 되어 버렸다. 등 뒤로 흐르는 땀 줄기에, 오늘도 지각한 만큼 건강해진 기분이 든다. 만족스럽다.

밀려있는 업무들은 밀려있는 게 제맛이니 내버려 둔다. 그리고 오늘 주어진 내 할 일을 한다.
그렇게 오늘도 야근이다. 저녁도 회사에서 먹게 생겼다. 세이브한 밥값은 술 마시는데 보태야겠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달은 뜬다. 그리고 나는 나를 미워하겠지. 30년 넘게 쭉 그래왔듯이.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마음-블루를 하면서 ‘단점 투성이의 나지만 그래도 나를 좋아해 봐야지’ 하며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분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왔다.

그런데 어떻게 잘해야 하지? 이렇게 하는 게 잘하는 건가? 잘 모르겠더라.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까? 친구들을 만날까? 여행을 다녀볼까? 하고 생각해보니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애매 하다.

생각해 봤다. 특별하지 않게,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잘하는 방법 3가지!

첫째. 출근할 직장이 있다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렇다. 이곳은 나에게 월급을 준다. 내가 이곳을 싫어하든, 좋아하든, 짜증을 내던, 뒷담화를 하든지 상관하지 않고 매달 돈을 준다. 바람직하다.
그곳으로부터 받은 돈은 나를 위해서 쓰기도 하지만 부모님이나 친척분들께 소소한 용돈을 드릴 수도 있고, 지인들에게 맛있는 걸 사줄 수도 있다. 스스로 어깨를 으쓱할 기회도 준다.

주말에 귀찮게 찾아가도 나를 반겨주며, 심심하지 말라고 모니터를 두 개나 주다니!
여름엔 냉방/겨울엔 난방은 덤이다.

둘째. 단점인 듯 장점 아닌 강점을 만든다.
나는 혼자다. 여러 가지 의미로 혼자다. 남들은 혼자인 나를 걱정하지만 괜찮다.
혼자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에게 감정을 숨기기 위해, 누군가에게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심사숙고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휴대폰 배터리도 오래 간다.

눈치 보는 건 힘들다. 많은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것까지 신경 쓰며 힘들어하지만, 그래도 ‘난 예의 바른 사람이야.’라며 우쭐해 한다. (사서 고생하는 느낌이지만 우쭐한 건 어쩔 수 없다) 생활 속 자화자찬.

셋째. 자신을 스스로 돌본다.
생각해보면 과거 본인의 장점/단점을 쓰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단점이 먼저 떠오르는 건 왜일까? 타인의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남을 위해서 신경 쓰는 다수의 것들은 과연 잘못된 것일까?
이런 생각을 자주 하려고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날 칭찬할까? 오늘은 나라도 나를 칭찬해야지. 그 칭찬은 부실한 묘묙 같은 자기애에 양분이 되고 한 뼘이나마 자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언젠가는 큼직한 나무가 될지도 모른다.

심각한 게으름 현상에 스스로 자책하고 혀를 내두르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던 중 읽은 책 한 권으로, 나는 게을렀던 사람이고 앞으로도 게으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레카! 33년 동안 게을렀다. 남은 생도 게으를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다니! 내가 게으른 이유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사실은 아직도 게으른 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이것 또한 어쩔 수 없겠지.


어쩔 수 없다고 순응하고 나니 뜻밖의 감정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게으른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은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새벽까지 술자리에서 달렸어도 아침 일찍 운동하러 나가고, 야근 후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운동을 하러 간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늘 그랬다.

긍정과 부정, 밝음과 어둠, 잘함과 못함 모두 다 그저 현상일 뿐이다. 현상에 극단적인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기보단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다 보면 다른 곳에 관심을 줄 여유가 더 생기지 않을까? 나를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미비한 시작이지만 나에게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이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발제자로써 마음이 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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